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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은 '나의 언어의 한계가 나의 세계의 한계다'라고 말한 바 있다. 결국 '내 언어의 한계가 확장되면 내 세계도 확장된다'는 결론이 된다. 그런 점에 있어 중국어는 영어와 더불어 가장 강력한 언어다. 한국어만 할 경우 나의 세계는 5,000만 명으로 제한되지만, 영어와 중국어를 할 줄 안다면 24억(10억 + 14억) 명 이상으로 확장되게 된다. 거의 전세계로 확장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어 공부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중국어는 내게 있어 더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중국어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선 얼마 못가 지쳤을 것이다. 모든 언어공부가 그렇지만, 특히 한자와 병음, 성조 등을 모두 암기해야 하는 중국어의 특성상 공부하는 데에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결국 동일한 시간에 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을 상당부분 포기해야 한다. 따라서 중국어가 내 삶에 있어서 뚜렷한 우선순위 안에 들지 않는다면, 단지 유망할 것 같아 배워보고 싶은 정도의 얕은 호기심이라면 애초에 시작을 하지 않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나는 무엇 때문에 영어(혹은 특정한 외국어)를 배우려고 하는가라는 목적의식입니다. 그것이 애매하면 공부는 그냥 '고역'이 되어버립니다. 내 경우는 목적이 아주 뚜렷했습니다. 아무튼 영어로(원어로) 소설을 읽고 싶다. 우선은 그것뿐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211~212쪽

나는 향후 중국 시장이 더욱더 성장하고 미국과 더불어 세계의 한 축을 리드하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중국과 접점을 지닌 기회들을 마주칠 때, 적어도 언어적 문제로 그 기회를 놓치는 일은 없도록 하기 위해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중국인들과의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고 신뢰를 줄 수 있는 정도, 그리고 중국어로 쓰여진 양질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정도의 중국어 실력을 키우는 것이 최종 목표다. 



혹자는 자동통역 기술의 발달로 앞으로는 굳이 외국어를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언어는 단순한 '의사전달'의 역할을 넘어서 '신뢰'와 '유대감'의 영역이다. '난 당신을 존중합니다' '난 당신의 문화를 이해합니다' 등의 정서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먼저 그들의 문화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는 모든 비즈니스의 기초가 되는 부분이다. 이는 앞으로도 절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다. 특히 중국어처럼 현지인들조차 배우기 어려워하는 언어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것은 마치 샘 오취리처럼 외국인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잘 할 때 우리가 크게 호감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다. 

중국을 여행하다가 보면 외국인인 내가 중국어를 조금이라도 알아듣고 대답하는 것에 굉장히 신기해하는 중국인들을 자주 마주칠 수 있었다. 이처럼 중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외국인은 그 자체로 중국 사람들에게 놀라움의 대상이다. 심지어 내가 외국인이 아니라 중국인인 줄 알고 대화를 이어나간 경우도 아주 가끔은 있었다. 물론 금방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탄로나긴 했지만. 중국인들 스스로도 자국어를 배우기 어려운 언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국인이 조금이라도 중국어를 할 줄 알면 그 점을 매우 높이 사며 대부분 큰 호의를 보인다. 기본적인 중국어는 물론이요, 고사성어나 관용어를 사용한다면 금상첨화라고 한다.


한 민족의 정신을 가장 직접 표현하는 것은 그 정신이 만들어 낸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언어의 구조다. -키토

지금 이 순간에도 기술의 발달로 기계 번역의 품질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는 단순한 문장의 나열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대화의 의도와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단지 단어를 확률에 따라 매칭할 뿐인 기계번역은 언어에서 가장 중요한 그 의도와 맥락을 파악하는 데에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더 나아가 미래는 정보의 가치가 더 커지는 고도의 지식정보사회다. 따라서 누가 더 고급 정보에 자주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다. 필요한 경우 기계 번역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스스로 원문을 찾아읽고 이를 활용하는 것과는 효율성 차원에서 비교되지 않는다. 관련 정보와 판단을 외부나 2차 자료에 의지하는 대신 직접 1차 자료에 접근하는 것은 분명 큰 경쟁력이 될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인터넷 정보는 영어로 작성되어 있고 글로벌 사회의 공용어도 영어다. 하지만 특정 산업 분야에 있어선 중국어의 가치는 점점 커지는 추세다. 그렇다고 영어보다 중국어가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지금은 물론 가까운 미래에도 중국어보단 영어가 훨씬 더 중요하다. 하지만 중국어 정보는 영어 정보에 비해 접근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확보한 인재가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영어에 더해 중국어까지 할 줄 아는 사람의 경쟁력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고, 그 결정은 여태 내가 내린 가장 잘 한 결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