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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준 책 한 권을 꼽자면 나는 마스다 무네아키의 책 ‘지적자본론’이라고 말하고 싶다. 200쪽 내외의 짧은 책이고 문장도 쉽게 적혀 있어 술술 읽히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책을 읽는 내내 츠타야를 만든 마스다 무네아키의 철학과 통찰력을 느낄 수 있었고 앞으로의 비즈니스는 어떠한 방향성을 갖고 나아가야하는지에 대한 단초를 얻을 수 있었다.
기획의 해답은 언제나 ‘고객가치’와 ‘현장’에 있다
차별화된 기획은 그 기획이 얼마나 ‘고객 가치’를 높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고객 가치를 높이는 힘 있는 기획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반드시 ‘현장’, 즉 고객이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에서, 고객의 입장에 서서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기획은 반드시 ‘피부 감각’에서 출발해야 한다. 기획의 해답은 한 사람의 타고난 재능이나 상상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좋은 기획은 현장에서 고객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고객을 주의 깊게 관찰하며 어떻게 하면 고객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서드 스테이지 시대: 지적 자본의 중요성
상품과 플랫폼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지적 자본’을 축적한 회사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까지 기업을 성립시키는 기반은 ‘재무 자본’이었다. 소비 사회의 첫 단계인 ‘퍼스트 스테이지’는 물건이 부족해 만들어내는 대로 팔리던 공급자 중심의 사회였다. 그러나 산업혁명으로 공급의 과잉이 일어났고 제품들이 상향평준화되면서 제품을 유통할 플랫폼의 중요성이 증대되었다. 그 결과 ‘세컨드 스테이지’가 도래했다. ‘세컨드 스테이지’는 플랫폼의 시대다. 하지만 오늘날의 소비사회는 이러한 유통 플랫폼들마저 넘쳐나면서 ‘서드 스테이지’에 있다.
이미 수많은 플랫폼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단순히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고객의 가치를 높일 수 없다. 따라서 ‘제안 능력’, 즉 ‘지적 자본’이 필요하다. 퍼스트 스테이지나 세컨드 스테이지에서는 '자본'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충분한 상품과 유통망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선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것만으로는 고객의 마음을 훔치는 '제안'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앞으로의 시대에 기업의 사활을 결정하는 것은 ‘지적자본’이 될 것이다.
상품과 플랫폼이 넘쳐나는 ‘서드 스테이지’에는 상품이 어떻게 고객의 삶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제안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개별적인 ‘상품 그 자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표현되어 있는 ‘제안’을 파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책 속에 담긴 풍부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공간인 것이다. 결국 각각의 고객에게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상품을 찾아 주고, 선택해 주고, 제안해 줄 수 있는 ‘지적자본’이 뒷받침되어 있는 기업만이 ‘서드 스테이지’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
츠타야가 무서운 점은 온라인 시대에 얻을 수 있는 가치를 효과적으로 오프라인 시장에 적용했다는 점이다. 츠타야는 데이터에 입각해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한 멋진 공간을 만든다. 츠타야를 운영하는 CCC(Culture Convenience Club)는 T포인트 서비스를 통해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차곡차곡 쌓아나가고 있다. 이 서비스는 5,600만 명이 넘는 회원들에게 업종을 가로질러 전국 43만 개가 넘는 T포인트 가맹점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를 제공한다. CCC는 이 구조에서 얻을 수 있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객들이 좋아할 만한 가치를 추론하고 기획해나간다. 예를 들어 '이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런 장소에서 아침 식사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라는 등의 경향을 '포인트 분석'을 통해 이끌어 낼 수 있다.
매력적인 브랜딩, 풍부한 고객 데이터베이스, 고객 가치를 이해하고 제안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직원 등과 같은 ‘지적자본’은 갈수록 더 중요해질 것이다. 따라서 점점 더 ‘지적 자본’을 보유한 인재 및 기업에 대한 수요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디지털 시대, 휴먼 큐레이션과 취향 비즈니스의 가능성
알고리즘에 기반한 인공지능 큐레이션과 비교했을 때, 휴먼 큐레이션(Human Curation)이 가질 수 있는 경쟁력은 무엇일까. 정교한 알고리즘에 기반한 추천 시스템을 보유한 인공지능과는 달리, 인간은 사람냄새가 묻어나는 스토리와 감성이 있다. 각 개인의 색깔이 묻어나는 매력적인 그런 큐레이션. 비록 로봇보다는 덜 '정교'하게 추천할지라도, 그 개인의 이야기와 감성을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휴먼 큐레이션의 가치는 점점 더 커질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휴먼 큐레이션은 개인의 ‘취향’에서 탄생한다.
츠타야가 한국에 던진 화두 또한 ‘취향’이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모든 비즈니스는 패션 비즈니스’가 될 것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읽어냈다. 실용적인 의미에서의 ‘기능’을 수행해내는 단순한 상품보다 라이프스타일을 나타내는 ‘패션’으로서의 상품이 주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는 이러한 패션 상품이 흥행하기 위해선 모두가 스스로의 라이프스타일을 찾아내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찾기 위해선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는 샘플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그 샘플을 발견할 수 있는 대상이 책, 영화, 음악이라고 봤다. 사람들은 영화 속 등장인물의 스타일을 동경하고, 음악에 표현된 세계관에 공감하며, 책을 통해 사고방식이나 행동방식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츠타야 매장을 책, 비디오, 음반이라는 물건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책, 영화, 음악에 담긴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할 기회와 장소로 제공한 것이다.
취향에 따른 큐레이션이 사람들의 새로운 소비를 이끈다. 지적 자본인 이러한 취향을 쌓아나가기 위해서 돈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시간이다. 절대적인 시간동안 꾸준히 관심을 갖고 노력을 들여 자신의 취향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일본은 70년대부터 고도의 경제적 부흥기를 맞이하면서 미의식의 수준이 높은 소비자층이 형성되었고 이러한 고객층이 ‘라이프스타일 기업’을 지향하는 츠타야의 든든한 팬층이 되어주었다. 우리나라 또한 이러한 일본의 모습을 부지런히 뒤따라가고 있는 과정에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형 츠타야를 꿈꾸는 크고 작은 기획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츠타야에 버금가는, 더 나아가 츠타야를 넘어서는 그러한 기획들을 조만간 한국에서 만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