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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일 제정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은 혼탁한 통신시장을 개선하고, 국민들의 통신비 부담을 완화하자는 본래 취지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단말기 보조금을 규제해 통신사들이 과도한 홍보비 부담을 못하게 막고, 같은 단말기를 누구는 비싸게 누구는 싸게 사는 이른바 ‘호갱’ 논란을 종식시키며, 대신 보다 더 많은 국민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기본요금을 내리겠다는 것이 법 제정의 취지였다.


물론 가계 통신비를 일정 부분 낮추는 등의 성과도 있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단통법 시행 전인 2013년 2인 이상 가구의 가계 통신비는 월평균 15만2792원이었지만 2016년에는 14만4001원으로 5.9% 줄었다. 가계 지출에서 통신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3년 4.68%에서 2016년 4.28%로 감소했다. 요금 할인을 받는 가입자도 2014년에는 8만3000여명이었지만 올해 1400만명까지 늘어났고 지난 9월 선택약정할인율은 25%까지 상향됐다.


하지만 단통법에 대한 전반적인 여론은 좋지 않았다. 특히 단통법은 제정 당시부터 ‘단지 통신사만 배불리는 법’이라 불리며 비판을 받아왔다. 통신요금 인하에 대한 강제 조항도 없이 통신사가 지급하는 보조금만 강제로 낮춰준 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신3사(SKT, KT, LGU+)의 2014년 마케팅비는 8조8천억원 수준이었는데 2016년에는 7조6천억원 수준이다.



어떻게 실패했는가


결정적으로, 불법 보조금 지급 현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출시 15개월 미만의 최신 휴대폰 지원금을 33만원 이상 지급할 수 없도록 규정한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가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불법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리점 위치 등을 지칭하는 ‘좌표’ 등의 신조어가 생기고 은밀한 불법 보조금을 챙겨주는 사례도 여전하다. 그리고 이런 지원금은 유통점과 판매점이 울며 겨자먹기로 챙겨주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의 폐업·도산 사례가 벌어지는 이유다.


불법 보조금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가 ‘페이백’이다. 페이백이란 휴대폰을 출고가로 구매하되, 이후 대리점으로부터 일정 금액을 다시 현금으로 돌려받는 것을 의미하며 공시지원금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불법 지원금으로 간주된다. 단통법이 시행된 이후에는 음지에서 아는 사람만 아는 경로로 이루어지는 음성적인 페이백 정책들이 더 생겼다는 지적이 많다.


예전에는 그래도 조금 관심만 가지면 인터넷 공개 게시판 같은 데서 싼 가격을 알아볼 수 있었는데, 이젠 그냥 아는 사람 통해 알음알음 통하거나 해서 더욱 꽁꽁 숨어버렸다는 것이다. 즉 정보 불평등에 따른 ‘아는 사람만 싸게 사기’가 더욱 심화되었다는 이야기다.



왜 실패했는가


첫째, 법이 원래 기획과는 다르게 제정된 것이 가장 큰 문제를 낳았다. 원래는 가입 형태뿐만 아니라 요금제에 따른 지원금 차별도 없도록 하는 것이 골자였지만, 이동통신사들의 요구에 의해 요금제에 따라 차등 지급할 수 있도록 바꿨다. 이후 통신사의 지원금과 제조사의 판매 장려금을 분리 공시하도록 했지만, 삼성전자의 요구로 분리 공시 대신 통합 공시로 바꾸었다. 이처럼 기업논리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법의 본래 취지와는 다른 결과물이 나오게 되었다.


둘째, 방송통신 분야에 대한 정책이 미래부와 방송통신위원회로 이원화되어 수립되는 것이 단통법의 난맥상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있다. 단통법을 보면 자급제 가입에 대한 요금 인하 부분은 미래부가, 신규 단말기에 붙는 보조금 부분은 방송통신위원회가 맡는다. 단통법의 기획 의도 중 하나인 분리공시 도입에 대해서도 미래부와 방송통신위원회 사이에 의견 충돌이 있으며, 해외 단말기의 경우 장려와 금지라는 완전히 정반대의 정책을 펼치는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즉, 이원화된 사령탑으로 인해 제대로 된 정책 추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통법이 나가야 할 길


휴대전화지원금 상한제가 2017년 10월 1일 폐지되었다. 2014년 10월 1일 단통법 시행과 동시에 도입된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는 출시된 지 15개월 미만 단말기에 이통사가 지원금을 33만원 이상 지원하지 못하도록 제한한 것이다. 당초 이용자 차별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지원금 상한제는 도입과 동시에 강한 비판에 직면했다. 오히려 상한제 도입으로 인해 모든 소비자들의 ‘호갱’화를 부추겼다는 지적이었다.


다만 단말기유통법 내 다른 조항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가령 선택약정요금할인, 지원금 공시 의무 등은 여전히 유효하다. 선택약정요금할인은 단통법 제6조에 명시된 내용으로서 이통사가 지원금을 받지 않고 이동통신 서비스에 가입하려는 이용자에게 지원금에 상응하는 수준의 요금할인을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통사들은 단말기 출고가와 지원금, 부가세를 제외한 실제 판매가 등의 정보를 홈페이지에 최소 7일간 공시해야 하는 ‘공시의무제’ 를 그대로 지켜야 한다.


앞으로는 어떠한 방향성 하에 단통법은 개정되어야 할까. 우선 불투명한 기존 독과점 유통 구조를 그대로 두고 단통법을 시행한 것이 제도의 한계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미루어볼 때, 단말기 자급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통사가 유통을 장악해 소비자들이 이통사 대리점에서 단말기 구입과 통신 서비스 가입을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땜질식 처방에 머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곳에서 단말기를 사고 통신과 단말기 구입이 분리되어야 가격 경쟁, 서비스 경쟁, 단말기 경쟁이 살아나고 소비자 이익이 커질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이나 오프라인 매장에서 따로 단말기를 구입해서 이통사에서 개통하는 것은 오히려 비싸 전체 8%밖에 되지 않는다. 단말기 자급제 관련 법안들 또한 기존 유통업자들과 통신사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진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에 더해, 참여연대는 단통법에 대한 보완책으로 우선 국민들의 통신요금을 낮추기 위한 ‘이동통신기본료’ 폐지를 주장했다. 이동통신망 설치를 명목으로 통신사들이 받아온 기본요금은 이미 통신망 설비가 완비되었음에도 이어지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월 2만원의 보편 저렴요금제 현실화도 주장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단통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국민 개개인마다, 각 가계마다 통신비로 인한 고통과 부담은 여전하거나 오히려 악화된 상황”이라며 “그동안 통신3사와 제조사의 막대한 이익과, 통신서비스 시장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우리 국민들의 통신비 고통과 부담 문제가 이제는 획기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모두 취합해서 보다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단통법이 개정되기 위해선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부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규제의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기본료 폐지에 관련된 사항은 이용약관심사 주무부처인 미래부가 맡는다. 하지만 통신비 인하와 관련돼 있는 분리공시제나 단말기 지원금 상한선 폐지 등은 방통위와도 관련이 있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다시 정책을 바라보고 개정함으로써 단통법이 보다 더 합리적인 정책으로 나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