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출처: CreoFire

1) 러너 하루키의 인생 철학


서머셋 몸은 "어떤 면도의 방법에도 철학이 있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매일매일 계속하고 있으면, 거기에 뭔가 관조와 같은 것이 우러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루키는 1982년 가을, 서른 셋의 나이에 달리기를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해서 달리고 있다. 거의 매일같이 조깅을 하고, 매년 적어도 한 번은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고, 그 밖에도 세계 각지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여러 장˙·단거리 레이스에 참가했다. 그는 매일매일 달리면서 어떠한 인생 철학을 갖게 되었을까. 


하루키는 매일 달린다. 하지만 그 리듬은 의식적으로 일정하게 유지하고자 한다. 빨리 달리고 싶다면 빨리 달리되,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비슷한 양의 에너지를 소모한다. 소설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더 쓰고 싶어도 과감하게 펜을 내려놓는다. 그러면 다음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하다. 또한 달리거나 스포츠 등 심신을 단련하고자 할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고통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에서 내가 살고 있다는 확실한 실감을 느낄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춰선 안 된다.






2) 러너와 소설가의 상관관계


하루키는 30년 넘게 지속적으로 글을 쓰면서,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자리매김했다. 자신의 묘비명에 '작가(그리고 러너)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이라 적혔으면 바라는 그에게 있어 달리기는 소설가라는 그의 직업에 있어 어떤 의미를 주었을까.



소설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은 재능이다. 재능 다음으로 중요한건 집중력이다. 집중력이란 자신이 지닌 한정된 양의 재능을 필요한 한 곳에 집약해서 쏟아 붓는 능력을 말한다. 그것이 없으면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달성할 수 없다. 그리고 이 힘을 유효하게 쓰면 재능의 부족이나 쏠림 현상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지속력이다. 반년이나 1년이나 2년간 매일의 집중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힘이다. 집중력과 지속력은 다행히도 재능과는 달리 트레이닝에 의해 후천적으로 획득할 수 있고, 그 자질을 향상시켜 나갈 수도 있다. 이는 근육의 훈련 과정과 비슷하다. 자극하고 지속한다. 또 자극하고 지속한다. 근육을 훈련시키는 것처럼, 매일 쉬지 않고 계속 써나가며 의식을 집중해 일을 하는 것이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정보를 신체 시스템에 계속해서 전하고 확실하게 기억시켜 놓아야 한다. 


하루키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웠다. 얼마만큼, 어디까지 나 자신을 엄격하게 몰아붙이면 좋을 것인가? 얼마만큼의 휴양이 정당하고 어디서부터가 지나친 휴식이 되는가? 얼마만큼 외부의 풍경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얼마만큼 내부에 깊이 집중하면 좋은가? 어디서부터가 타당한 일관성이고 어디서부터가 편협함이 되는가? 얼마만큼 외부의 풍경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얼마만큼 내부에 깊이 집중하면 좋은가? 얼마만큼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고, 얼마만큼 자신을 의심하면 좋은가?


소설가라는 직업에 이기고 지고 하는 일이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쓰는 것은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것과 비슷하다. 자신이 쓴 작품이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도달했는가 못했는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즉 끝까지 달리고 나서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가 없는가, 그것이 장거리 러너에게 있어서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3) 책 속에 드러난 '인간' 하루키


그 밖에도 이 책을 읽다보면 소설 속에 가려져있던 하루키라는 '인간'의 매력에 빠질 것이다. 이 책을 읽고도 하루키가 더 궁금해진다면, 2016년에 번역된 그의 자전적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나 또한 그랬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은 뒤 바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을 읽었고, 두 권을 다 읽은 지금은 그의 소설을 다시 읽어볼 참이다. 그의 소설들도 예전과는 새롭게 읽혀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