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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불어 닥친 ‘응답하라’ 신드롬


<응답하라>는 영리한 드라마 시리즈다. 중장년층에겐 향수와 공감을, 젊은 세대에겐 신선함과 재미를 제공했기 때문에 모든 세대를 아우르며 폭넓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쓰레기’, ‘칠봉이’, ‘삼천포’ 등 매력적인 캐릭터 속에,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가족’과 ‘우정’, ‘사랑’ 등 따뜻한 정서를 표현해냈다. 특유의 유머와 감동코드는 보는 내내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자아내게 했다. 그렇게 <응답하라>는 우리 시대의 문화로서 자리매김했다. 무한도전의 ‘토토가’ 시리즈의 흥행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출처: tvN



응답하라는 ‘복고’ 그 이상이다


하지만 응답하라 시리즈를 그저 복고에 편승한 추억 콘텐츠이기에 성공했다고 봐선 안 된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여러모로 기존의 드라마들과 다르다. 실제로 신원호 PD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공요인은 ‘잘 만들어서’ 아니라 ‘다르게 만들어서’라고 말한 바 있다. 신원호 PD는 KBS 출신의 예능PD였다. 2011년 예능 <남자의 자격>을 연출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CJ로 넘어와서도, 그는 드라마PD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드라마를 만드는 지 잘 몰랐다. 그래서 최초의 대본작업부터 구성, 대본회의, 편집, 촬영에 최종 종편까지 예능프로그램의 제작 메커니즘대로, 우리 마음대로 연출했다고 한다. 가령 1분 1초도 지루해선 안 된다는 예능 문법에 따라 드라마를 제작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덜 지루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장치였던 성나정의 남편 복선도 극중 엄청난 재미 요소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신원호 PD는 앞으로도 계속 드라마 PD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가 방송을 배운 토대가 예능이고, 드라마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예능인으로서 다르게 만들었던 것 때문에서였다. 


이명한 PD는 한 인터뷰에서 <응답하라> 시리즈를 융복합 시도의 산물이라고 평가했다. ‘다르다’라는 말은 ‘차별화’와 동의어이며, <응답하라>는 우리가 익숙했던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고 등장한 블랙스완(Black Swan)이었다는 것이다.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확보한 상황에서 이종의 분야를 얹어 새로움을 창조하는 방식은 장르 파괴야말로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불러일으키며 더 나아가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위해선 두려워 말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 분야에서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영역을 넓히려는 자신감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야지만 제 2, 제 3의 <응답하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출처: tvN



‘나음’보다 ‘다름’


코코 샤넬은 "대체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되려면, 끊임없이 차별화해야 한다(In order to be irreplaceable, one must always be different)"는 말을 남겼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지만 남들과는 다른, ‘차별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19세기 미술은 사실적 묘사에 근거해서 인상파가 생겼고, 이후 야수파, 입체파, 추상파로 변화되었다. 이렇게 간단히 19세기 미술의 변천사를 살펴봐도 끊임없이 익숙함 위에 '다름'을 얹는 과정의 연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모두 기존의 기법이나 관점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를 한 결과들인 것이다. 세상의 변화는 하나의 주장인 정(正)과 다른 주장인 반(反)이 조화를 이루는 합(合)으로 톱합되며 끊임없이 '다름'을 만들어간다.


차별성을 인식시키려면 무조건 다르다고 외칠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에 새로운 다른 것을 들이대야 한다. 그래야 다름이 더 두드러진다. 이를 위해선 ‘누구’와 먼저 차별화할지’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버드대의 문영미 교수는 저서 <디퍼런트>에서 <POP-POD 방식>을 제시한다. 고객에게 마켓 리더와의 유사점(POP, Point of Parity)을 내세워 제품이 속한 카테고리를 알린 후에 차이점(POD, Point of Difference)을 인식시키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서울'의 경우 도쿄처럼 이국적인 아시아 도시(POP)인 동시에, 밤에도 더 활기찬 도시(POD)라는 점을 소개하며 도쿄와의 차별화 요소를 더했다.


<응답하라> 시리즈도 비슷하게 접근할 수 있다. 일반적인 가족 드라마의 기본적인 서사나 코드를 따라가면서도(POP), 예능PD 출신답게 시트콤적 특징과 특유의 웃음 코드(POD)를 어필했다. 이러한 이유에서 <응답하라>는 방송계의 판도를 바꾼 명작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결국 핵심은 어떤 카테고리 안에 당신의 제품을 포지셔닝할지를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어떻게 나만의 차이점을 부각시킬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처: tvN



그렇다면 <응답하라>는 어떻게 시리즈를 낼 때마다 성공을 거듭할 수 있었을까. 이를 위해선 끊임없이 그 '다름'을 점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차별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할 것은 3D (Desirable, Distinctive, Durable) 포인트다. 성공적으로 차별화된 제품은 예외없이 3D를 충족시킨다.


<응답하라>는 앞서 언급한데로, 드라마가 아닌 예능의 문법을 따랐기 때문에 기존의 여타 드라마들에 비해 독특함(Distinctive)를 어필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응답하라>는 기본적으로 전연령대에서 호감(desirable)을 산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호감을 산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드라마가 따뜻한 정서를 담아냈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들 수 있겠다. 


가령 골목길 양쪽에 촘촘하게 늘어선 집에 모여 사는 이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감동은 오늘날 더 강하게 다가온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죽어나가도 알지 못하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이웃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스로 외로움을 자처하는 현대인들에게 과거 골목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의지하고 위로하는 이웃들의 모습은 더 큰 감동과 추억으로 느껴지기 마련이었다.


출처: tvN



그리고 이러한 이유에서 <응답하라> 시리즈는 '믿고 본다'는 팬덤이 생겼다. 전작에서의 성공을 통해 충성심(loyalty)을 가진 팬층을 확보했기 때문에 입소문이 나며 더 많은 시청자를 확보할 수 있었고, 결국 전작보다 성공한 후기작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즉 지속적으로 차별성을 유지(Durable)하기 위해선 '본질'은 지키되, 본질의 표현은 디자인을 통해서든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든 계속 바꾸어가면서 '자기다움'을 만들어내야 한다.


<응답하라>는 기본적인 복고 컨셉에서 캐릭터나 이야기 등에서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가령 앞선 두 시리즈에서의 핵심은 '청춘'이었다. 하지만 세번째 작품인 <응답하라 1988>에선 '청춘'뿐 아니라 '가족'이라는 소재를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당시를 살았던 청춘들 뿐 아니라 어른들의 이야기까지 비중 있게 다룬 것이다. 이처럼 중심 컨셉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변화의 창의성'이라는 두가지 요소가 대중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