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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재스민>, 케이트 블란쳇을 위한, 케이트 블란챗에 의한 영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로 유명한 우디 앨런 감독의 2013년도작이다. 케이트 블란쳇은 이 영화로 2014년 86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골든 글로브상, 미국 배우 조합상,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블루 재스민>은 우디 앨런의 영화 중 가장 잔인하면서도 씁쓸한 정서를 담아낸 영화로 평받는다. 


우디 앨런은 평상시에 배우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이 아닌데, 이 영화는 드물게 두 배우를 염두에 두고 썼다고 한다. 바로 자매로 나오는 셀리 호킨스와 케이트 블란쳇이다. 케이트 블란쳇이 아니라면 누가 이 영화를 소화해낼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케이트 블란쳇은 완벽한 연기를 선보인다. 



영화를 찍는데 케이트 블란쳇 같은 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했다는 것은 손에 핵무기를 쥐고 전쟁을 하는 것과도 같다. -우디 앨런

영화는 '재스민(케이트 블란쳇)'의 심리를 따라가며 중간중간 플래쉬백을 끼워넣어 비참한 현재의 재스민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풍요롭고 행복했던 과거의 재스민에 비해 현재 그녀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도드라게 강조해 보여준다. 그렇게 본다면 인간이 느끼는 불행의 정도는 불행 그 자체가 지닌 '강도'보다는 '행복과의 낙차'로 인해 박탈감인 듯 싶다.


영화 <캐롤>의 한 장면.


배우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가 돋보이는 다른 영화를 추천한다면, 2015년 작인 <캐롤>을 들 수 있다. <캐롤>은 소설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의 자전적 소설이자 유일한 로맨스 소설이다. 케이트 블란쳇은 이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직접 제작자로 나섰고, 크랭크인 전부터 50년대 레즈비언 소설들을 읽으며 엄청 몰입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케이트 블란쳇의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폭스캐처>, 스티븐 카렐, 마크 러팔로, 채닝 테이텀 세 명의 배우가 멱살 잡고 두시간 내내 끌고 가는 영화





<머니볼>로 유명한 베넷 밀러 감독의 2015년도작이다. 영화를 볼 때 웬만하면 한번만 본다는 박찬욱 감독이 배우들 연기력에 반해 연달아 두 번 봤다는 영화다.


<폭스캐처>는 개봉 때 (관람을) 놓쳤기 때문에 나중에서야 영상자료원에서 상영할 때 처음 한 번 보고 깜짝 놀라서 플레인아카이브에서 나온 블루레이를 한 번 더 본, 그래서 제가 두번을 보는 영화는 정말 극소수인데 그 중에 한 편입니다. -박찬욱 영화감독

포스터에도 보이듯, 이 영화는 스티븐 카렐과 마크 러팔로, 채닝 테이텀 세 명의 배우가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끌고 간다. 세 사람 중 누구 한 명한테 기울지 않게, 모두가 엄청난 연기력을 선보인다. 박찬욱 감독이 미국영화 연출 제안을 받으면 나이 대마다 이 세 사람의 배우와 일하고 싶다는 얘기를 늘 미국인 프로듀서에게 할만큼 완전히 반하게 만들었던 작품이라고 한다. 


왼쪽부터 베넷 밀러 감독, 마크 러팔로, 채닝 테이텀.


<폭스캐처>는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5개 부문(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분장상, 각본상), 72회 골들글로브에서 드라마부문 작품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후보로 지명되었고 2014년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폭스 캐처>는 베넷 밀러 감독 특유의 정적인 연출력으로 배우들의 연기력이 더 돋보인다. <폭스 캐처>는 고요하면서도 서늘한 기운, 냉기가 서려있는 영화다. 감정은 절제되어 있으면서 여운은 길게 만드는 연출 방식을 통해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가슴이 먹먹하게 만든다. 



스티븐 카렐은 미국의 대표적인 실력파 코미디언이자 배우로, 미드 <오피스>, <에반 올마이티>, <빅 쇼트> 등의 주연으로 나왔다. <폭스캐처>로 2015년 87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스티브 카렐은 이 영화를 통해 '마치 존 듀폰이 빙의한것 같다'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스티브 카렐은 차가운 광기의 소유자인 존 듀폰의 콤플렉스나 깊은 상처를 탁월한 연기로써 표현해냈다. 냉정과 광기가 합쳐진 뒤틀린 존 듀폰이라는 인물을 미친 연기력으로 표현해낸 스티브 카렐이 영화 <에반 올마이티>나 미드 <오피스> 등에서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던 코미디언 배우와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실제로 실존 인물의 외모와 흡사해지기 위해 코에 가짜 보형물을 붙이기도 했으니 더더욱 다름 사람처럼 느껴진다.



헐크로 유명한 배우 마크 러팔로의 연기 또한 감탄스러웠다. 사실 머리도 벗겨지고 이미지도 기존과 달라 처음에는 이 역이 마크 러팔로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극 중에서 뛰어난 레슬링 실력을 선보이는데, 실제로 고등학교 때 레슬링을 잘해서 대학에 레슬링 장학생으로 진학할 뻔 했다고 한다. 마크 러팔로는 사실 대기만성형 배우다.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800번이 넘는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모자라는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바텐더, 도어맨, 요리사, 심지어 땅 파고 나무 심어주는 일까지 했었다. 꾸준히 문을 두드린 덕에 영화계에 진출하지만 덜컥 뇌종양에 걸렸고, 수술 후유증으로 배우에게 치명적인 안면마비가 찾아왔다. 힘겨운 재활 치료를 통해 10개월만에 안면마비를 치료하였지만 왼쪽 귀의 청각을 잃었다. 하지만 이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현재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성실하면서도 탁월한 연기력을 겸비한 마크 러팔로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놀랐던 건 채닝 테이텀의 연기였다. 채닝 테이텀의 경우 영화 <스텝 업>의 이미지가 강했던지라 <폭스캐처>를 보기 전까지는 이렇게나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는지 몰랐다. 특히 쟁쟁한 선배 연기파 배우인 스티븐 카렐과 마크 러팔로와 함께 주연으로 출연해 상대적으로 약한 존재감을 비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이는 완벽한 기우에 불과했다. 개인적으로 스티브 카렐 이상으로 완벽한 연기를 해냈다고 생각한다. 마치 레슬링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거대하고도 탄탄한 몸을 자랑하는 그는 실제로도 레슬링 장면을 멋지게 소화해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단연 압권은 레슬링 경기에 진 후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며 자학을 하는 장면이었다. 숨을 죽이면서 본 장면으로, 영화 속 베스트 장면으로 꼽고 싶다. 채닝 테이텀은 형에 가려진 2인자 콤플렉스를 지닌 외로운 마크 슐츠의 내면 연기를 완벽하게 해냈다.


<폭스캐처>는 레슬링을 소재로 한 단순한 스포츠 영화가 아니다. 세 배우가 그려내는 압도적인 연기가 보고 싶다면, 반드시 봐볼 것을 추천한다. 


왼쪽부터 스티브 카렐, 마크 러팔로, 채닝 테이텀이 연기했던 실존인물 마크 슐츠, 채닝 테이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