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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군가를 '취향'이라는 단위로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무슨 음악을 듣는지, 어떤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는지, 어떤 작가의 소설을 즐겨 읽는지.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한다면 단편을 더 좋아하는지, 아니면 장편을 좋아하는지. 가장 좋았던 하루키의 소설 제목은 무엇인지. 이렇게 작은 요소들이 하나둘 모여 그 사람의 취향이란 게 드러난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가운데 '인간'은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취향이 묻어나는 글을 읽고, 취향이 확고한 사람들을 만나는 건 늘 즐겁다. 내가 모르는 세상에 대해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저렇게도 살아갈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들. 그들이 나와 매우 비슷하게, 혹은 정반대로 생각하는 부분들을 발견하는 재미. 나의 시야를 넓혀주고 가치관을 확장시켜주는 이러한 경험들은 '나'라는 세계의 한계를 넓혀준다. 새삼 느끼지만 세상은 정말 넓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취향과 색깔, 삶의 철학,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은 더 많다.



취향을 쌓아나가기 위해서 돈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시간이다. 절대적인 시간동안 꾸준히 관심을 갖고 노력을 들여 자신의 취향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 또한 내 취향을 발견하는 노력을 계속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5개월 동안 50편 이상의 영화를 보았다. 그 결과 내가 어떤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고, 어떤 감독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어떤 배우들을 좋아하는지 등을 알아가고 있다. 올해 1월부터는 애플뮤직을 시작했다. 예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다양한 음악들을 접하면서 내가 어떤 류의 음악을 좋아하는지 발견해나가고 있다. 애플뮤직의 탁월한 큐레이션 기능은 내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서포터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준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삶을 살아간다. 각자가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행복을 느끼는 포인트가 다르다. 따라서 취향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은, 타인의 취향에 대해 함부로 평가해서도, 조언해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개별적인 삶의 경험 속에서 만들어간 자신의 취향을 마치 보편적인 진리인 양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너무도 부끄러운 행위다. 나의 취향이 더 옳고 고상하며, 당신의 취향은 고루하다는 식의 마인드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있고 그것으로 세계는 성립되어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의 가치관이 있고, 그에 따른 삶의 방식이 있다. 나에게는 나의 가치관이 있고, 그에 따른 삶의 방식이 있다. 그와 같은 차이는 일상적으로 조그마한 엇갈림을 낳고, 몇 가지인가의 엇갈림이 모이고 쌓여 커다란 오해로 발전해갈 수도 있다. (중략) 그러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와 같은 괴로움이나 상처는 인생에 있어 어느 정도는 필요한 것이다, 라는 점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타인과 얼마간이나마 차이가 있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자아란 것을 형성하게 되고, 자립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유지해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중략) 하나의 풍경 속에 타인과 다른 모습을 파악하고, 타인과 다른 것을 느끼며, 타인과 다른 말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님으로써, 나만의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는 것이다. (중략) 마음이 받게 되는 아픈 상처는 그와 같은 인간의 자립성이 세계에 대해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될 당연한 대가인 것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39~40쪽

각자가 자신만의 기준과 속도로 삶을 살아가며 취향을 발견해나가는 것. 그리고 상대의 취향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것. 이 두 가지를 늘 염두에 두고 살아가고 싶다.